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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한 시간인 것 처럼

한나 김미성 2006. 6. 30. 10:26

중고등학교 때 소위 <앙케이트 노트 돌리기>란  것이  유행이었다.

자기만의 앙케이트 노트를 예쁘게 만들어 친구들에게 돌리면

앙케이트 문제에  정성껏 답하고 치장까지 해 주는 일.

그래서 누구의 앙케이트 노트가 가장 멋지게 꾸며지고 많은 아이들이

멋진 답을 써 주었느냐가 인기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이 꿈꾸는 이상형은?

...뭐 이런 흔하고 뻔한 질문들이었는데

꼭 빠지지 않던 마지막 문제..

*지구가 한 시간 후 멸망한다면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뭐..누구의 말을 빌어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부터 시작해서

소녀들의 간지러운 답들이 다양하게도 적혀 있었다.

공주과였던 한 친구는 내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욕조에 향기나는 거품비누 풀어놓고 목욕을 하며 세계종말을 기다리겠다.

이그.. 영낙없이 지금도 그리 철없이 공주처럼 산다.

한 친구의 답.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이 친구. 잠 줄여가며 공부하느라 잠이 부족한 아이도 아니었다.

-죽는 순간까지  열심히 공부하겠다

평소에 공부하고 담 쌓던 친구다. 하하.

-고급식당에 가서 한 시간동안 비싼 음식 시켜서 실컷 먹겠다. 계산은 후불이니까.

차라리 이건 애교이다.

 

 

가끔..

정말 내 삶의 마지막 시간을 알고 기다린다면

나는 무엇을 하면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떠신가.

 

 

십여년 전. 좀 많이 아플 때.

어려운 수술을 앞두고 하던 일이 생각난다.

입원을 하기 전.

집안 청소. 싱크대 청소. 옷장 정리....

내가 만약 돌아올 수 없더라도 내가 남긴 흔적이 깨끗하기를 바라며

말끔하게 정리하고 엄마 아버지를 뵙고 친구들과 통화하고

행여 나쁜 감정을 정리 못 했던 사람과는 말끔히 풀고

마지막으로 미장원 가서 머리를 정리하고

내 부끄러운 삶을 회개하며 나의 연약함을 의탁하는 기도를 하고...

그런 웃지 못 할 일들을.

입원할 때 마다 되풀이 했었다.

마치 마지막을 준비하듯이...

그때는 정말이지 앞 날을 예측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마지막을 준비하며 주변정리>를 하는 마음으로 살던 시절의

내 마음가짐이란 비장했고 너그러웠고 감사했고 모든것이 감동이었다.

그런데 건강해 지고 몸과 마음이 편해지자 점점 느슨해졌다.

적당히 게을러지고 가진 것 보다 갖고 싶은게 더 많다는 욕심이 생기고

감동할 일이 있어도 조금은 무뎌지고  너그러움 보다는 나를 앞세우려는

고집도 세어져 갔다.

 

 

며칠 전 시장에 다녀오다 아파트 앞 비보호 횡단보도를 건너다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 했다. 

딴 생각하며 다가오는 트럭을 보지 못 하고 인도에서 막 차도로 내려서는데

부아~앙.

바로 내 앞을 휙 지나가는 커다란 트럭의 뒷바퀴를 바라 보면서

이처럼 마지막 순간은 부지불식 간에 찾아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되

오늘 이 시간이 내 인생의 마지막 한 시간인 것 처럼

진지하고 값지게 최선을 다 하고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늘 갑자기.

여고시절의 앙케이트 노트 맨 마지막 문제가 생각이 났다.

난 묵상하면서 진지하게 내 삶을 뒤돌아 보았다.

한 시간 후 내 삶이 끝난다 해도 허둥대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아쉬워 하지 않고 부끄러워서 주저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맞이 할 만큼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치만 여러분에게 이리 심각한 문제를 내드리기엔 너무 죄송하다.

그래서 이렇게 제안한다.

자아~

여러분은 지금 꿈많은 고등학생이 되는거다.

장난꾸러기 친구 한나가 앙케이트 노트를 돌린다.

그러니 가볍게 받아들고 답을 한번 적어보시면 좋겠다.

성실하게 답변을 해 주십사 부탁을 드린다.

나도 곰곰이 생각하고 답을 써 볼 참이다

 

 

*********삶의 마지막 한 시간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