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조물 냠냠

@@ 아버지 좋아하시는 < 어리굴젓 >

한나 김미성 2012. 2. 10. 15:25

 

 

 

잘 지내셨지요? 아주 오랜만에 요리 포스팅을 합니다.

영양의 보고인 <굴>은 역시 바닷물 기온이 가장 낮은 겨울철이 맛도 제일 좋고 영양도 더 풍부하다 합니다.

더구나 양식이 아닌 <자연산 굴>의 풍미는 아주 진해서 먹을 때마다 그리운 이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어떤 특정한 맛 때문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니 말입니다.

 

 

저희 친정아버지는 <겨울 어리굴젓>을 참 좋아하십니다.

얼기 직전의 무를 끝이 날캄한 놋수저로 긁어서(써는 것보다 이리 하면 무가 아주 부드럽지요)

자연산 굴에 무랑 미나리랑 갖은 양념에 버무려 옹기 단지에 담아 한나절쯤 아랫목 이불 속에 파묻어 두어

살짝 삭힌 어리굴젓을 진지상에 올리면

다른 반찬 쳐다 보지도 않으시고 어리굴젓에 밥을 슥슥 비벼 맛나게 드시곤 하셨지요.

 

 

 

그때와는 사뭇 다른 어리굴젓이지만 어리굴젓을 담글 때마다 친정 아버지가 맨 먼저 생각납니다.

양념 잘 어우러져 아주 맛깔스러운 어리굴젓을 일부러 아버지처럼 밥 수저 위해 척 걸치고 먹으려니 목울대가 뻣뻣해집니다.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 어? 밥이 아주 질게 되었네요? 하셨지요?

하하. 연로하신 어머님 때문에 밥도 나물도 모두 무르게 해 드리다 보니 식구가 늘 진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더 질게 되었군요.^^

 

 

 

 

 

자연산 굴 1킬로그램. (굴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수저 위에 올려 보았습니다. 씨알이 아주 작음을 아시겠지요?)

소금물에 굴을 잘 헹구어 소쿠리에 건져  물기가 얼추 빠지면 밑소금을 뿌려 둡니다.

 

 

무 1/2. 사과 1. 당근 1/2. 양파 1/2  수삼 2뿌리. 은행1홉. 풋마늘 3뿌리

고춧가루, 다진 마늘. 꽃소금.

(미나리는 빨리 익게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넣지 않고. 대파 대신에 풋마늘을 넣었어요.

대파는 많이 들어가면 음식에 점성이 생겨 끈적거리게 하는 성질이 있지요.

그리고 주로 배를 넣는데 이번에는 사과를 넣었어요. 사과도 잘 어울리고 맛있지요.)

 

 

 

 무와 당근은 사방 1.5~2 센티 크기에 아주 얇게 썰어주고, 수삼도 얇게 썰고, 사과도 무 크기로 썰고, 풋마늘도 가늘게 썰어두고.

무, 당근, 수삼.. 딱딱한 채소에 먼저 소금, 고춧가루, 다진 마늘 넣어 버무린 후

나중에 굴, 사과 풋마늘, 은행들을 넣고 마저 버무립니다.

 

 

 

무와 굴을 함께 먹으면서 간을 맞춘 후 밀폐 용기에 담아 보통 실온에서 하루 삭히는데

저희집은 무엇이든 삭힌 것 보다는 싱싱한 걸 좋아해서 바로 냉장 보관합니다.

 

 

하루 지난 어리굴젓입니다. 굴 두어 개, 무, 수삼까지 고르게 건져 밥 수저 위에 척 얹었습니다.

침을 꿀꺽 삼켜야 하는데 저는 또 눈물이 먼저 목울대를 당깁니다.

 

 

 

 

사랑하는 이들. 그리운 이들.

한나가 정성껏 담근 어리굴젓. 맛있게 드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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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래 포스팅 <낯선, 너무도 낯선>이란 글에서 아버지 소식을 잠깐 언급했었지요.

친정에 내려가서 하룻밤을 자면서 엄마와 의논 끝에

 <당분간..추위 좀 가면..정신이 좀 더 흐려지시면.. 엄마 눈이 더 나빠지면..>...

이렇게, 아버지의 요양원행은 일단 미루기로 결정했답니다.

아마도 엄마는 쉽게 결정을 못 내리실 듯 합니다.

저는 겉으로는 엄마 걱정하면서도 속으론 손뼉을 치고 싶을만큼 안심이 됩니다.

 

"아버지, 제가 누구예요?" 여쭈면 "몰라요." 하시다가도

제가 누구냐고 귀찮게 해 드리면 벙긋 웃으시면서 "둘째딸 한나~" 이리 말씀하셔요.

저는 알아보아 주시는 게 너무 기뻐 아버지 뺨에 제 뺨을 한참 부비고..

그러다가도 아버지는 딸을 보시면서 "우리나라 정치가 걱정입니다." 하시고

엄마에게 "아줌마는 고향이 어디세요?" 하시다가 또 좀 있으면 "인덕씨~"하고 엄마를 찾습니다.

"여기 있으니 안심하고 주무세요."라는 엄마 말씀 듣고서야 눈을 감으십니다.

아버지 곁에서 자는 하룻밤 사이에도 주무시다 세 번을 "인덕씨"찾으시던 아버지.

다음 날. 간식을 권하는 둘째 딸에게 안 드시겠다고 고개를 저으시길래

"왜, 배 안 고프세요?" "아니. 니가 있으니 안 먹어도 배부르다." 또 이리 저를 울리십니다.

제가 떠날 시간이 되자 시무룩하시더니 기어이 우시는 아버지.

몇 번을 안아 드리고

"아부지, 아부지, 둘째 딸 한나. 잊지 마세요" 부탁 드리고 부탁 드렸습니다.

 

엄마 상 타시던 날 찍은 사진과 제 사진을 인화해서 아버지에게 쥐어 드렸습니다.

당신 자신도, 엄마 사진도, 제 사진도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 하시더니

헤어질 때 사진 보며 다시 여쭈니 다 알아 맞추시더군요.

자주 찾아뵙지 못 하면서 사진이나 보고 둘째 딸 잊지 마시라 하는 거 같아서..

날마다 날마다 아버지 곁에 있을 수 없음이 얼마나 죄송했는지.

 

 이 어리굴젓. 아무래도 먹을 때마다 울 거 같아서 아버지에게 보내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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